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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현의 트랜스크리틱] 대한민국을 ‘동아시아의 영국’으로 만든 진정한 주역관리자2022-01-25


    대한민국을 '동아시아의 영국'으로 만든
    진정한 주역


    글_권재현(저술가)

     

     
    「근대 시민의 형성과 대한민국」, 이승렬 저, 그물, 2021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라는 유명한 경구가 있습니다. 독일 철학자 헤겔이 법철학(1821)’ 서문에서 쓴 표현입니다. 미네르바는 로마신화 속 지혜의 여신(그리스 신화 속 아테나에 해당)입니다. 부엉이는 그 미네르바가 등장할 때 대동하는 동물로 미네르바의 지혜를 상징하는 지물(指物·attribute)의 하나입니다. 헤겔은 역사가 어느 정도 일단락된 뒤에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보편적 교훈 내지 지혜가 정리된다는 의미로 저 표현을 쓴 것입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도 헤겔이 말한 그런 통찰이 필요합니다. 대다수 한국인들의 근현대사 이해는 보통 3가지 차원에서 이뤄집니다. 인물 중심, 이념 중심, 결과 중심입니다. 첫째는 근현대사에 명멸해 간 인물에 대한 평가 중심입니다. 고종이 계몽군주였나 무능한 암군이었느냐,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국부이냐 독재자였냐 같은 인물에 대한 호오의 감정에 기반한 평가입니다. 두 번째는 친일‘용으로 반분되는 적대적 이념 잣대로 역사를 재단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역사의 흐름이 어떻게 귀결됐느냐 또는 누가 역사의 승자가 됐느냐는 결과론에 입각한 역사평가입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결코 그런 3가지 차원의 통찰에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거기엔 헤겔이 말한 변증법적 통합이 결여돼 있기 때문입니다. 또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는 개별적 평가에 치우쳐 보편적 지혜를 추출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물과 이념, 결과를 넘어서서 우리가 후대에도 전해줘야 할 보편적 깨달음과 교훈은 뭐가 돼야 할까요?

     

    역사학자 이승렬 씨가 지난 세밑에 발표한 근대 시민의 형성과 대한민국에는 그런 변증법적 통찰과 보편적 지혜가 엿보입니다. 지난 150년간 이 땅에서 벌어졌던 개항, 식민지배와 독립운동, 분단과 이념투쟁 그리고 내전과 민주화의 진전에서 우리가 진정 건져내야할 통찰과 교훈이 무엇인가에 대해 절실히 묻고 답한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히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성취라고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저자는 한국 중국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3, 북한까지 포함하면 4개국의 근현대사를 큰 틀에서 조망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지금 현재 그 4개국 중에 어떤 나라에 살고 싶으신가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2가지 기준 종합했을 때 현재까지 그 총점이 가장 낮은 나라는 북한이고 가장 높은 나라는 남한이라는 점에 한국인 대다수가 동의할 것입니다. 광복 70여년 만에 식민본국이던 일본을 능가할 정도로 대한민국이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자유를 구가하게끔 만든 이유는 어디서 찾아야할까요?

     

    동학운동 이래 농민중심의 민족해방운동의 전통을 강조해온 민족주의 좌파의 역사관은 그 전통의 계승자임을 자인한 북조선인민공화국의 정치적, 도덕적 파탄으로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반대로 고종이 미완의 개혁군주였다면서 일제의 개입이 없었다면 위로부터의 근대화가 가능했다고 주장한 민족주의 우파의 역사관 역시 시대착오적 왕당파적 발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냉철한 사실주의를 강조하며 근대 자본주의의 토대가 일본식민지를 통해 이식됐다고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은 일본 제국주의는 물론 이후 한국의 독재 정치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역사관은 자민당의 독주 속에 정치적 후퇴를 거듭하는 일본과 끊임없는 정권교체를 통해 아시아 최고의 민주국가로 자리매김한 한국의 격차를 설명해줄 수 없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독재와 민주주의 기원'을 쓴 미국의 역사학자 베링턴 무어가 프랑스와 독일 영국의 사례를 비교한 관점을 빌려옵니다. 아래로부터 혁명을 이룬 프랑스가 끊임없는 내전과 전쟁에 시달리고, 위로부터의 개혁을 이룬 독일이 전체주의에 사로잡히는 동안 영국은 그런 핏빛 대가를 치르지 않고 경제성장과 자유민주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그런 영국의 성공비결은 농민이 중심이 된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상층 엘리트 중심의 위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의회주의에 방점을 둔 진취적 상층지주의 온건한 리더십의 산물로 분석했습니다.

     

    저자는 이를 동아시아에 적용했을 때 중국과 북한이 농민 중심의 프랑스 노선, 일본이 엘리트 중심의 독일 노선을 좇았다면 한국이야말로 영국의 길을 택한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그럼 그 중심이 됐던 진취적 상층지주(젠트리 계급)가 누구일까요? 저자는 2007제국과 상인이란 책에서 한국에서 본격적 산업화가 시작된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다양한 지주계급을 분석하며 이를 모색했습니다. 그리고 15년 뒤 이 책에서 저자가 내린 결론은 조선시대 변방에 위치했다가 일본에 의해 주도된 개항의 기회를 적극 활용해 부를 축적한 호남지주들을 그 주역으로 지목하며 근대 시민으로 호명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전라남도와 전라북도가 만나는 전북 줄포항 주변의 호남지주 가문에서 태어난 인촌 김성수, 고하 송진우, 근촌 백관수, 가인 김병로를 중심으로 한 일본유학생 그룹입니다. 저자는 이들을 인촌 그룹이라고 명명합니다. 놀라운 점은 이런 주장을 펼친 저자가 인촌을 친일파로 규정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는 점입니다. 저자가 인물, 이념, 결과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정한 미네르바의 지혜를 갈구했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결론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 보실까요?

     

    '김성수를 필두로 한 부르주아지 2세대 즉 시민은 두 가지 측면에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였다. 하나는 구체제 조선왕조 관료제였고, 다른 하나는 이승만 독재정권이었다. 국민주권과 공화정치라는 보편주의가 결여된 민족주의는 그 앞에 통일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국민과 민족을 분열시키고 폭력적 억압을 위한 도구로 변질되었다. 3.1운동에서 발아된 국민주권과 공화정치는 통합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결실을 맺었다.'

     

    새롭게 형성된 호남지주들은 조선왕조와 결탁해 농민의 피를 빨아먹던 기호 지방 중심의 지주와 달랐습니다. 동학농민전쟁의 원흉이었던 조병갑 같은 이들이 돈을 주고 벼슬을 산 뒤 백성을 착취했다면 인촌의 아버지들(양부와 친부)은 근대적 농장경영과 합리적 재투자로 땅을 넓히면서 착취당하지 않기 위한 방어적 목적으로 벼슬을 샀습니다. 또 그만큼 땅에 대한 애착도 적었기 때문에 그 땅을 팔아 방직, 교육, 언론사업 같은 새로운 산업에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에서 고위 관직을 지낸 기호지방의 지주들은 땅귀신이 들려서 이런 진취성을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사업에 가장 많이 투자한 이들은 오히려 조선시대 내내 방외세력으로 취급 받던 서북(평안도)과 호남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지주를 보유했던 기호(서울 경기도 충청도)지역 지주들이 교육사업에 가장 돈을 투자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인촌이 인수했던 중앙학교 역시 원래는 기호지역 지식인들이 세운 학교였습니다. 이런 사실은 조선의 주류였던 기호파가 상실한 도덕적 리더십의 공백지에 진취적 호남지주들이 진입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그 기호지역 지주 중에서 가장 대표적 가문이 우당 이회영과 성재 이시영으로 대표되는 경주 이씨 가문입니다. 우당네 6형제는 당시 조선 최고의 부자였지만 10만석이 넘는 땅을 모두 팔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면서 경제적으로 처절하게 몰락했습니다. 광복이 이뤄졌을 때 6형제 중 고국 땅을 다시 밟은 사람은 초대 부통령이 된 성재 한 분뿐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이 독재의 길로 들어서자 초대 부통령인 성재와 2대 부통령인 인촌이 손을 맞잡고 반독재투쟁에 나선 장면을 저자가 묘파한 대목이 더욱 감격스럽게 다가섭니다. 식민지 상황에서 해외로 떠돌며 독립투쟁을 펼친 전통적 명문가와 식민지 조선에 남아 고군분투를 펼쳤던 인촌 그룹이 하나가 돼 오늘날까지 이어진 진정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보한 순간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현실권력이 추구했던 우익노선이 아니라 성재와 인촌이 지향한 공화주의와 의회주의의 온건한 중도노선이야말로 현재의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가치를 대변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해방공간에서 암살된 4명의 정치인이 있습니다. 고하 송진우, 설산 장덕수, 몽양 여운형, 백범 김구입니다. 이중 고하와 설산은 인촌그룹의 핵심인사였습니다. 인물과 이념, 결과 중심으로 역사를 읽어내는 사람들은 이들의 이념적 차이와 남북한에서 비주류에 머물렀다는 점에만 주목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관점은 전혀 다릅니다.

     

    '서로 다른 '이념의 땅'이 굳어지기 전에 '중간'을 건설하려고 했던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는 살해되었고, '이념의 땅'이 굳어진 후에(남북분단이 현실화된 후에) '중간'을 건설하려고 했던 김구도 살해되었다. 1945년부터 1950년 사이에 급진주의는 분단의 내부적 배경이 되었다. '중간'에 서 있던 온건주의는 희생되기도 했지만 남한 사회에 시민사회의 뿌리가 되었다.'

     

    인촌은 대부분 생애에서 주역보다는 배경이나 병풍에 머물고자 했습니다. 중앙학교를 인수하고, 3·1 만세운동을 막후지원하고, 동아일보를 세우고, 보성전문을 인수해 고려대를 세우고, 한민당과 대한민국을 세울 때도 전면에 서기보다는 배경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럼에도 식민지 조선에서 자유와 독립의 씨앗을 뿌렸고, 해방공간에선 극단을 배격하고 통합을 모색했으며, 공산주의와 싸우기 위해 이승만과 손을 잡았지만 그가 독재의 길로 들어서자 정면으로 맞대결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촌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공동설립자이자 그 정통성의 진정한 담지자였습니다. 그런 인촌을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여전히 닻을 내릴 곳을 찾지 못해 떠도는 유령선이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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