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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원의 글줄 사이로 路] 사진을 감싸는 책의 몸관리자2022-02-28


     

    사진을 감싸는 책의 몸

    글_유지원(글문화연구소 소장)

     

     「너의 표정」, 박찬욱 저, 을유문화사, 2021

     

    책의 생각 사이로[路]

    『너의 표정』은 말수가 적은 책이다. 적극적으로, 말이 없다.

     

    표지와 책등에는 제목과 저자만 국영문의 작은 글자로 써있다. 뒷표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날개도 없다. 본문에는 사진이 전부다. 어떤 페이지에는 사진조차 없다. (완전히 비어있는 하얀 면은 물론 왼쪽 페이지다. 오른쪽 페이지는 비지 않게 한다는 것이 책들의 오랜 규범이다) 모든 페이지의 시각적인 중앙에(수치적인 중앙보다 살짝 올라가야 시각적인 중앙이다) 배치된 사진 곁에는 제목도, 촬영 연월일도, 촬영 장소도 없다. 단지 아래쪽 양끝에 페이지 번호만 간신히 작게 있을 뿐이다.

     

    텍스트는 책으로서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기 위한 판권과 목차, 작품 목록과 작가 약력, 그리고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의 글이 전부다. 이 글도 길지는 않다. 모든 텍스트는 숨 낮춘 크기, 개성을 낮춘 고딕체(국문)와 산세리프체(영문)로 짜여져있다. 행간은 여유롭고, 여백은 느긋하되 느슨하지 않다.

     

    그림 1. 『너의 표정』에서 텍스트가 가장 많은 페이지조차 지면 조판 상 말의 성격이 차분하고 간결하다.

     

    저자 약력을 보면 사진 작가로서의 이력과 영화 감독으로서의 이력이 분리되어 있다. 각각 사진 전시 이름과 영화 작품 이름으로만 이력을 담백하게 드러냈다. 영화 감독이기도 한 박찬욱 저자가 사진 작가로서 저작한 책이라는 의중일 터다. 책은 말을 아끼며 이런 방식으로 뜻을 전한다.

     

    책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과묵하면 시각과 청각을 넘어선 다른 감각이 예민해진다. 촉각이다. 촉각에 집중을 하게 되면 종이의 존재감이 부상한다. 도공되지 않은 종이의 두툼한 질감이 예사롭지 않아진다.

    사진들도 재질감이 강하다. 표현주의적이다. 추상형식주의가 기하학적으로 매끄러운 질서를 드러낸다면, 추상표현주의는 질감이 두드러진다. 이 책에는 수직과 수평을 엄격하게 맞추지는 않은 사진들이 많다. 비스듬히 찍힌 프레임 안에서 우연히 조우한 사물들은 관계를 이루며 질감을 자아낸다. 우둘투둘한 질감이 드러나는 것은 사물의 표면(表面)이다. 드러난(表) 얼굴(面). 그렇게 표면에 드러나는 감정이 표정이다. 이 사진책의 제목은 ‘너의 표정’, 생물이 아닌 사물과 풍경들은 이렇게 표정을 갖게 된다.

     

    얼굴에서 생김새가 구조라면 표정은 질감에 가깝다. 구조는 추상형식주의적이고 표정은 표현주의적이다. 표정은 ‘드러난 감정’으로, 감정은 외부의 자극을 감각에 받아들이고 이것을 해석해서 거기에 내적인 의미를 부여할 때, 그 결과로 생겨나는 마음의 상태다. 세계는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그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존재한다.
     

    이 사진들이 포착하는 감정은 하나의 형용사로 쉽사리 포획되지 않는다. 뭔가가 더 묻어있다. ‘우스꽝스러움’에는 ‘쓸쓸함’이나 ‘기괴함’ 같은 것이 묻어있다. 비장한가 하면 안쓰럽다. 보통은 잘 어울리지 않던 형용사들이 기묘하게 접합하고 있다. 고전적 조화 아닌 뒤틀림과 잔재, 부조화음의 세계. 세계는 기실 이런 표정들이 깃들어 총체를 이룬다.

    이렇게 보이는 세계에 물리적으로 개입해서 어떤 연출을 가하지 않더라도, 그저 어느 한 장면을 프레임 안에 포착하는 데에만 해도 강한 주관이 작동한다.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사건의 중요성은 과장되고, 들어오지 못한 것들은 소거되기 때문이다.

     

     

    그림 2. 『너의 표정』 중 사진 ‘Face141’(2013).


     

    박찬욱 작가의 카메라는 스펙터클을 향하지 않는다. 사진 ‘Fac141’에서 주인공은 계단의 얼룩인 것 같다.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을 뿐더러 제거해야 한다고 여기는 대상이다. 이 얼룩은 우연히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는 지구상 어느 지역의 늦은 오후 햇살이 지나가는 시간을 만나고 있다.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이며 가로등으로부터 늘어진 길고 긴 그림자가 우연히 프레임 속에 함께 등장하면서 얼룩은 괜시리 의미심장해진다. 엉뚱한 방향으로 나있는 이 주인 잃은 얼룩 ‘그림자’는 어쩌다 생겨난 것일까? 문득 얼룩에게 인격화한 감정을 갖게 된다.

     

    이 사진들 속에서는 이렇게 아직 이야기가 되지 않은 이야깃거리들이 잠재된 상태로 웅성거린다. 태생이 이질적인 것들이 우연한 중첩을 야기하며, 천연덕스럽게 유머도 불길함도 일으킨다. 이런 잠재성이 도처에 농축된 이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고요하게 우글거린다. 카메라로 포착되기 전에는 누구도 그곳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광경들에 갑자기 숨이 훅 불어넣어진다.

     

    이런 사진들을 바라보면, 사진이라는 개념에 대한 관객의 기대도 바뀌어간다. 사진을 통해 사람들이 보는 세계가 기존의 경험에 기댄 막연한 기대와 달라지면, 사람들이 세계를 보는 방식도 변형된다. 그렇게 관객의 성격과 질감도 바뀌게 된다. 그런데, 어떤 개념에 대해 한번 결론지은 것을 인간의 완고한 뇌는 좀처럼 수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성질을 가진 뇌라는 것을 한번 휘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박찬욱 작가의 사진들은 과묵하게 이런 일을 한다. 미디어가 다른 만큼 스타일과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 또한 그렇듯이, 이런 일을 한다.

     

    책의 몸 사이로[路]

     

    그림 3. 『너의 표정』에서 사진을 감싸고 독자의 시간을 감싸는 종이의 표정.


     

    사진을 감상한다는 것과 사진책을 감상한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책의 경험은 또다른 총체적인 감각의 경험이다. 사진이 책이라는 미디어를 만나고, 또 사진과 사진이 양쪽 페이지에 나란히 놓이는 편집의 흐름이 생기면, 그 병치된 관계들 속에서 새로운 맥락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 관계들을 종이 뭉치가 감싸고 그 육신 전체가 독서를 둘러싸면서, 독자가 처한 주관적인 공간의 촉감도 시간의 성질도 바뀌어간다.

     

    사진으로 엮은 책은 ‘사진집’이라 해서 ‘집’이란 이름을 가지지만, 책은 사진에게도 독자에게도 옷과 집의 성격을 모두 갖는다. 몸이 직접 닿고, 공기로 감싸진다. 종이는 벽보다는 섬유의 성격에 가깝다. 이 책에 사용된 본문 종이는 이탈리아 수입지인 아코프린트 170g/㎡이다. 종이 본연의 성격을 간직한 모조지와 얼핏 비슷하지만 감촉과 발색이 더 진중하다. 큼직한 판형의 두툼한 종이는 소리가 낮은 모직 같다. 종이 역시 감각 정보다. 문자도 이미지도 아니더라도, 종이와 같은 경험들이 모두 책이 제공하는 ‘파라텍스트’가 된다.

     

    이런 종이를 넘기는 시간은 느긋하게 흐른다. 책의 육신은 두터운 말없음에 동참한다. 종이는 잉크로 찍힌 사진이라는 정보를 재현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겹겹이 보호하며 감싼다. 책장을 넘기는 공기의 흐름을 일으킨다. 책이 펼쳐지면 기이한 생명력이 불쑥 웅성인다.  여기서 흐르는 시간은 매끈하지 않은 표면만큼이나 묵직해져 있다. 잠재된 이야깃거리들은 뭉쳐져 되직한 농도를 얻는다. 시간은 마치 점성이 높아 유속이 느려진 물질 같은 질감을 갖는다. 이런 시간의 표정이 독자의 독서를 느리게 감싸며 독자에게 책의 기억으로 남겨진다. 숨 밭은 일상 속에서 모처럼 호흡을 깊게 하면서도 적당한 긴장을 놓지 않게 하는, 기분 좋게 감도 높고 각성된 느림을 기억의 인장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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