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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명우의 책 읽기] Ep#16 또 다른 오뒷세우스의 귀향(2)관리자2022-04-26


    EP #16 또 다른 오뒷세우스의 귀향(2)


    글_노명우(사회학자)
     

    「인간 섬」, 장 지글러 저/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2020
     

    오뒷세우스의 고향 이타카는 에게 해의 서쪽에 있고 트로이아는 고향 이타카의 동쪽이다. 그가 이타카를 떠나 희랍 연합군과 함께 에게 해를 건너 트로이아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가한지 10년이 넘었다. 트로이아 전쟁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라는 영웅이 탄생하는 무대였으나, 오뒷세우스는 그 전쟁에서 영웅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늘 그렇듯 전쟁은 소수의 영웅만을 기억한다. 비록 오뒷세우스는 기발한 꾀로 전쟁에 도움을 주었으나 트로이아 전쟁의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이고 헥토르이다. 전쟁에서 그는 주연이 아니다. 트로이아 전쟁이 끝났고 희랍군은 승리했으니 오뒷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고향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그는 자신의 지위를 되찾는다.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한 희랍 연합군은 각자의 고향에서는 대접받는 왕이었으나,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한 왕은 한 둘이 아니다. 이 많은 왕 중에서 영웅이라는 명예를 얻는 단 한 명만이 왕 중의 왕이다. 영웅이 되어 왕 중의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으니 오뒷세우스는 트로이아에 머물 이유가 없다. 그는 즉각 이타카로 돌아가야 한다. 이타카로 돌아가면 그는 왕이라는 지위를 회복한다. 고향으로 돌아가 지위를 회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아내 페넬로페를 구혼자로부터 구해내고 얼굴도 보지 못한 아들 텔레마코스를 만나야 하기에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의지는 더욱 강해진다. 그 의지의 힘으로 오뒷세우스는 트로이아에서 서쪽 방향으로 에게 해를 건넌다.

    폴리페모스가 그의 귀향을 방해하고, 로토파겐이 귀향길을 멈추라고 유혹해도 그의 귀향 의지를 꺽지 못한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는 그저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한 여러 명의 장수 중 한 명이다. 성공적인 귀향 만이 그만의 유일무이한 존재의 가치를 회복시켜준다. 하지만 그의 의지 만을 에너지 삼아 귀향하기에 바다는 험난하다. 도처에 위험에 도사리고 있다. 거친 파도를 만나 수없는 난파를 거듭한다. 모든 것을 잃고 죽을 지경으로 바닷가에 난파해 쓰러져 있는 그를 죽음의 경계에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에게해의 무수히 많은 섬의 원주민들의 환대이다. 알키노오스 왕과 그의 딸 나우시카야의 환대가 없었다면 배도 부하도 잃고 알몸으로 스케리아 섬에 난파한 그는 결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오뒷세우스의 귀향 이야기를 노래한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우스의 의지에 대한 기록이자 동시에 그가 의지를 꺽지 않도록 그들 도운 환대에 관한 기록이다. 의지와 환대가 결합할 때 의지는 현실화될 수 있었고, 결국 그는 고향 이타카에 돌아가 자신의 존재를 회복했다.

    에게해의 바다 위엔 관광객을 실은 크루즈 선이 항해한다. 에게해 크루즈 여행길에 오른 어떤 이는 크루즈 항해 기간 동안 읽을 생각으로 <오뒷세이아>를 챙길 수도 있다. 탁월한 선택이다. 책 마다 그 책에 어울리는 독서의 장소가 있기 마련인데, <오뒷세이아>에 가장 적합한 독서 장소는 에게 해 바다 위이다. 그 크기와 안락함 덕택에 에게 해를 오가는 크루즈 선은 눈에 확 띄지만, 에게 해에는 크루즈 선 뿐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눈에 띄지 않도록 조용히 움직이는 고무 보트도 있다. 그 고무 보트는 크루즈 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크기이지만, 그 고무 보트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결코 크루즈 선 탑승객과 견주어 부족하지 않다. 고무 보트는 레스보스 섬에 닿기 위해 동쪽에서 서쪽으로 에게 해를 건넌다. 레스보스 섬, 아리스토텔레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다생물을 연구했던 장소로 기억되고, 에게 해 크루즈 여행을 꿈꾸는 사람에겐 크루즈 기착지 중의 한 곳이다.

    레스보스 섬에는 크루즈 관광객에게 알려지지 않은 모리아가 있다. ‘모리아는 핫스팟(hot spot) 중의 하나이다. 아이폰 사용자에게 핫스팟은 데이터를 공유하는 방법을 일컫는 단어이지만, 에게 해에서 핫스팟은 우리의 짐작을 벗어난 의미로 사용된다. 에게 해 위의 섬들 가운데 소아시아에서 가장 가까운 다섯 개의 섬(레스보스, 코스, 레오스, 시모스, 카오스)은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하여 파키스탄,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전쟁과 고문, 국가의 파괴 등을 피해 그리스 해안으로 접근하는 난민을 받아들이는 장소이다. 그 곳을 핫 스팟이라 부르는데, ‘모리아는 핫스팟 중의 하나이다.

    난민은 오뒷세우스의 에게 해를 건넜던 방향과 동일하게 에개 해를 건너지만, 이들이 바다를 건너는 이유와 오뒷세우스가 에개 해를 건너는 이유는 완전히 다르다. 오뒷세우스는 고향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에게 해 서쪽으로 이동하지만, 난민은 고향에서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서쪽으로 이동한다. 오뒷세우스에게 고향 이타카는 자신의 존재를 회복시켜주는 공간이지만, 난민에게 고향은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곳이다. 오뒷세우스는 고향에 돌아가면 평온을 얻지만 고향을 떠난 난민은 고향에 머무르면 존재가 위협받는다.

    유럽 연합의 솅겐 협약에 따르면 솅겐 가입국 가운데 어느 한 나라의 국경을 통과한 사람은 다른 가입국으로 아무 제약 없이 이동할 수 있다. 레스보스 섬은 소아시아로부터 아주 가깝지만, 그곳은 솅겐 조약 협약국인 그리스의 영토이다. 그 그리스 영토에 발을 딛으면 종교 박해, 정치적 탄압, 인종 차별, 기아 등의 이유로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향을 떠난 난민은 자신에게 환대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공간이 열릴 것이라 기대한다. 난민에게 레스보스 섬 상륙은 오뒷세우스의 이타카 도착과도 같은 의미이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레스보스 섬에 발을 딛고자 고무 보트에 몸을 싣고, 이들이 레스보스 섬에 닿지 못하도록 그리스와 터키의 해양경비함, 유럽대외국경 관리협력 기관인 프론텍스 파견 정찰함은 필사적으로 그들이 탄 고무보트 상륙을 막는다. 난민을 실은 고무 보트가 레스보스에 닿지 못하도록 그들을 밀어내는 작전은 푸시백(push back)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레스보스 섬은 밀어내려는 푸시백과 필사적으로 섬에 닿으려는 난민이 부딪히는 뜨거운 지역(핫 스팟)있다.

    푸시백에도 불구하고 섬에 닿은 사람은 모리아에 수용된다. 난파한 오뒷세우스는 환대의 문화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모리아에 수용된 이들에겐 기대했던 환대가 없다.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이들을 돕는 정신과 전문의는 이렇게 말한다. “레스보스 섬에 도착한 난민 모두는 그토록 힘든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악몽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으로 깨닫게 됩니다. 모비스의 수용소에서 그들은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기다림을 끈질기게 버텨 내야 하는데, 그건 그들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입니다”(장 지글러, <인간 섬>, 151) ‘모리아에 수용된다는 것은 살기 위해 고향으로부터 벌어지려는 난민의 최초의 본능적 의지를 포기하게 만드는 공간에 갇힌다는 뜻이다. 오뒷세우스는 로토파겐을 먹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상실한 부하를 독려해 결국 고향으로 돌아갔다. ‘모리아에 있는 난민의 의지는 고향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모리아가 그 의지를 포기하게 매일 로토파겐을 그들에게 먹이고 있다. 로토파겐에 의해 그들의 의지가 꺽이지 않는 에게 해의 환대가 필요하다. 루소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어느 한 쪽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고약한 경우는 자신의 운명이 상대의 재량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라고. 가장 고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 그들은 자격 없는 존재가 아니라 권리가 있는 존재이다. 세계 인권선언문 14조엔 분명히 이렇게 쓰여 있다. “박해 앞에서 모든 사람은 다른 나라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그곳으로 망명할 권리가 있다. 고향으로 돌아갈 의지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고향을 떠날 권리가 있는 사람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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