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TITLE

    [이창남의 행간 속의 사회] 나치시대의 무장한 보헤미안들과 부르주아 시민들관리자2022-04-26


    나치시대의 무장한 보헤미안들과 부르주아 시민들


    글_이창남(경북대 교수)

     


    「전체주의의 기원2」, 한나 아렌트 저/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은 전체주의의에 관한 대표적인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던 많은 사상가들이 이 문제를 다루었지만, 특히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성립시키고 전개하는 정치적 기제들을 이 책에서 심도 있고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한 여러 다른 이론들과 비교해보면, 원자화된 근대 개인주의가 전체로 취합되면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대미문의 전체주의 사회를 만들었다는 아렌트의 주장은 그 기원을 바로 근대 대중사회에 두고 있는 점에서 상당히 두드러진다.

    아렌트가 구체적으로 전체주의 사회로 지목하고 있는 체제는 1938년 이후 히틀러가 이끌었던 독일의 국가사회주의 체제와 1930년 이후 스탈린이 이끌었던 사회주의 체제를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민주적 선거로 정권을 잡은 나치는 그렇지 않으면 (전쟁하지 않으면) 우리는 몰락할 것이다는 슬로건으로 전국민을 전쟁으로 몰고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패배할 경우를 대비하여 지도자께서는 지혜롭게 가스에 의한 쉬운 죽음을 독일 국민에게 준비해 두셨다는 말로 공포에 떨고 있는 국민을 위로했다고 한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이러한 전체주의 시스템에 복무하며 부지불식간에 파국으로 끌려들어간 국민 대중들의 반응이다. 사실 아렌트의 말대로 인구가 적은 국가에서 전체주의 정권이 나타날 가능성은 없다.” 상당수의 국민 대중이 없이는 전체주의 정권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체주의는 광신적인 지도자 한사람의 산물이 아니라 근대의 대중에서 비롯된 것이다. 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고, 근대적 산업화의 충격을 겪고 있던 당시 독일의 다수 대중들의 주요특징은 아렌트에 따르면 야만과 퇴보가 아니라 고립과 정상적 사회관계의 결여였다. 환경부적응자, 실패자, 모험가로만 구성된 히틀러의 초기 정당은 무장한 보헤미안들이었다는 것이다.

    원자화되고 고립된 채로 부유하던 이들은 나로 존재하기보다는 우리로 존재하기를 간절히 갈망했다. 이는 고독한 근현대 대중들의 잠재적 심리를 이룬다. 그런 점에서 현대 전체주의는 개인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아렌트에 따르면 뿌리를 잃고 고립된 개인들이 파시즘의 신화 속에 우리로 화학적 결합을 이룬 결과이다. 나치의 이데올로기들은 고립된 자아들을 우리로 결합하는 촉매였을 따름이다.

    이러한 부유하는 낭인과 같은 대중들 속에 부르주아적 개인으로 교육을 받은 성실한 대중들도 가세했다. 아렌트는 나치 지도자들 가운데 이러한 사례로 힘러를 들고 있다. 그는 괴벨스처럼 보헤미안도 아니었고, 슈트라이허처럼 성범죄자도 아니었으며, 로젠베르크 같은 미친놈도, 히틀러 같은 광신자도, 괴링 같은 모험가도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무장한 보헤미안이 아닌 부르주아 교육을 받은 성실한 개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파시즘에 가담해서 성실하게 전체주의의 시스템을 가동시켰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례에서 아렌트는 근현대 시민문화의 이념적 무력함을 확인한다. 그는 사생활 속에 은거하고 가정과 출세 문제에만 오로지 헌신하는 태도는 사적 이해관계가 제일이라고 믿는 부르주아 계급의 타락한 산물이다라고 지적한다. 부르주아의 계급적 자존심과 세계관적 방향성이 해체되면서 이들은 곧바로 파쇼의 충직하고 영리한 개가 되었던 것이다. 아렌트를 따라가면 전체주의는 현대의 부유하는 대중들과 방향을 잃은 부르주아들의 윤리적 충실성이 왜곡된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를 따라 조합된 정치사회적 결과물이다.

    대학이 비판적 성찰과 상상력을 훈련하는 곳이기 보다는 직업을 얻기 위한 스펙을 쌓는 곳으로 전락한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근래에는 학령인구의 감소로 대학의 규모를 축소하는 것도 필수적이 되어가고 있다. 그럴수록 더 더욱 세계관을 형성하고, 비판적 이해를 훈련할 수 있는 교육과정들은 줄어들고 실용이 모든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어떤 사회시스템을 창안하는 인재보다는 그 안에 충실하게 적응하는 사람들을 요구하는 사회적 강박은 점 점 더 거세지고 있다.

    설사 우리가 전체주의 체제 속에 사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저항해야할 시점에 싸우지 않고, 반대해야할 시점에 노라고 말할 줄 모르는 이들만 양산하는 우리의 교육은 무장한 보헤미안들과 함께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앞에 무력하게 끌려들어간 과거 나치시대 많은 성실한 독일 시민들의 몰락을 돌아보며 배워야할 것이 많을 듯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