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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동석의 천변만화(千變萬化)] 신의 침묵에 담긴 진실관리자2022-04-26


    신의 침묵에 담긴 진실


    글_장동석((재)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 평론가)

     


    「침묵」, 엔도 슈사쿠 저/공문혜 옮김, 홍성사, 2005


     

    뒤늦게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을 찾아보고 돌아앉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윤동주의 시 <팔복八福>이 머릿속을 맴돈다. 혜성의 충돌로 인한 지구 대멸종이 코앞인데 오로지 에만 관심이 있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처참한 행태에 욕지지가 일어서일까. 그것이 단지 미국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현실이라는 자각 때문일까. 영화는 영화일 뿐 오해하지 말자며 툴툴 털어버리려는데, 생각은 꼬리에 꼬리는 물고 또 이어진다.

    왜 하필 윤동주의, 그 유명한 <서시><별 헤는 밤>도 아닌, <팔복>이었을까. 예수는 제자들에게 슬퍼(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선포했는데, 왜 동주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것도 여덟 번이나 반복한 끝에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고 노래했을까. 답을 찾지 못해 또 돌아앉았는데,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권의 책이 떠오른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결국 영원히 슬플 것이라는 동주의 절절한 노래는, 혹 저 높은 하늘 위에 존재하는 신은 낮고 낮은 땅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은 아닐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제는 우리 모두도 알고 있는 그 진실 말이다.

    종교소설과 세속소설의 차이를 무너뜨린” 20세기 일본 문학의 거장이라고 평가받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17세기 일본 나가사키 지방의 가톨릭 박해 상황을 세밀하게 그려내며, 신은 존재하는가를 묻는 작품이다. 아니 존재한다는 믿음은 있으되, 왜 당신이 스스로 창조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신자들의 고통에는 한사코 침묵하는가를 작가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침묵>의 주인공 세바스티앙 로드리고의 독백 중 한 대목이다. “주여, 당신은 왜 침묵하고 계십니까? 당신은 왜 언제나 침묵하고 계십니까?”

    1630년대만 해도 유럽인의 눈에 일본은 세계의 끝에 위치한 보잘것없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서 포르투갈 출신의 존경 받는 사제가 배교했다는 소문은 충격에 가까웠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좌절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신앙과 사상 면에서 굴욕적인 패배로 여겨졌다. 일본 선교는 이미 1549년부터 한 선교사가 가고시마에 상륙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여러 선교사들의 일본에 터를 잡으며 수많은 신자들, 즉 기리시탄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종래의 정책을 바꾸어 가톨릭을 박해하기 시작하면서나가사키의 니시사카에서만 26명의 사제와 신도들이 화형에 처해졌다. 이어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1614모든 가톨릭 선교사를 해외로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70여 명의 사제들이 추방길에 올랐지만, 37명의 사제가 차마 신도들을 버리고 갈 수가 없어잠적을 택했다. 페레이라 사제 역시 잠복 사제들 중 하나였다. 그는 잠복 사제들의, 그들의 가르침을 믿어 신에 자신들의 몸과 마음을 의탁한 기리스탄들의 꺾이지 않는 신앙을 본국 포르투갈로 수시로 알리며 일본 선교의 희망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배교(背敎)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신들의 은사인 페레이라 신부가 눈부신 순교를 했다면 몰라도 이교도 앞에서 개처럼 굴종했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세 명의 젊은 사제 프랜시스 가르페, 호안테 산타 마르타, 세바스티앙 로드리고는 직접 일본에 건너가서 이 사건의 진상을 자신들의 눈으로 분명히 확인하고자일본행을 택한다. 1637년의 일이었다.

    두 달여의 항해 끝에 도착한 일본의 상황은 처참했다. 말라리아로 마카오에 남은 마르타의 삶이 복돼 보일 정도다. 가르페와 로드리고는 마카오에서 만난 상당히 교활한 성격으로 보이는 일본인 기치지로에게 길잡이를 맡겼지만, 불안은 감출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의 운명을 믿을 수 없는 자들에게 맡기셨던 것을 알지만, 자신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기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기치지로의 연결로 신자들과 연결되었는데,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실상은 가히 지옥이었다.

    전임자들은 가톨릭 신도들을 학살했지만, 새로이 일을 맡은 나가사키의 부교오(奉行, 지방행정관) 이노우에는 다양한 고문 방법을 동원해 신자들을 배교시켰다. 온천, 일명 지옥의 열탕에 던지는 것은 예사, 나중에는 양손과 양발을 밧줄로 묶고 국자로 뜨거운 물을 떠서 신자들의 머리 위에 끼얹었다. 국자 밑에 몇 개의 구멍을 뚫어 국자 물이 서서히 떨어져서 고통이 오래가도록 했다. 더 처참한 고문은 구멍 매달기였다. 귀 뒤에 상처를 내고 어두운 구덩이에 거꾸로 매다는데, 자신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고스란히 지켜보며 죽음과 어두움 속에서 몸부림치다 결국 과다출혈로 죽게 된다. 페레이라도 이 형벌 끝에 배교했다.

    주인공 로드리고가 그토록 찾아 헤맨 페레이라는 사와노 추우안이라는 일본 이름으로, 일본인 아내까지 맞이한 상태였다. 그는 천문학과 외과(外科) 관련 책을 번안하는 한편, “하나님의 가르침과 가톨릭교의 과오와 부정을 폭로하는 <현위록>(顯僞錄)이라는 책까지 쓰고 있다고 했다. 로드리고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도 구멍 매달기 고문에 처해 달라고 일본인 통역에게 소리쳤지만, 그는 오히려 오늘 밤 너는 반드시 배교할 것이다라고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는 온통 고문당하는 이들의 신음소리뿐이었다. 그 밤, 그는 절규한다. “주여, 지금이야말로 당신은 침묵을 깨 버리셔야 합니다. 더 이상 침묵하고 계셔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올바름이며 선이며 사랑의 존재임을 증명하고, 당신이 엄연히 존재함을 이 지상과 인간들에게 나타내기 위해서라도 뭔가를 말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신은, 예나 지금이나 침묵한다. 페레이라에 이어 로드리고도 예수의 성화를 밝고 배교한다. 그때 이런 음성을 들은 듯 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신은 배교자의 발에 짓밟히는 것마저 용납하고 사랑한다는, 어쩌면 이 놀라운 역설을 페레이라와 로드리고는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오카다 산에몬. 로드리고의 일본 이름이다. 이야기의 아이러니는 마지막 장면에 드러난다. 마카오에서부터 비열하기 이를 데 없었던 기치지로가 배교한 로드리고, 아니 오카다 산에몬을 찾아와 고해를 청한다. 수많은 순교자들의 신앙은 추앙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이든, 그것이 밀고였을지언정 그들의 삶은 악한 것일까. 신은 기치지로 같은 이들의 삶 또한 긍정하지 않을까.

    작가는 이렇게 묻는 듯 하다. 페레이라와 로드리고가 듣고자 했던 신의 음성은 무엇이었을까. 책의 마지막 구절은 오카다 산에몬의 독백이다. “그분은 결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비록 그분이 침묵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의 오늘까지의 인생은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분의 말씀을, 그분의 행위를 따르며 그리고 말하고 있었다.” 신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듯, 악의 구렁텅이로 향해 달려가는 세상을 향해 이래서 안 된다고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무엇이 정의이고 진실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음에도, 악은 오히려 그 몸집이 더 커지고 있는 세상. 무엇이 우리를 구원할지, 그 해답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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