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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명우의 책 읽기] EP #16 오뒷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의 숨겨진 힘 관리자2022-05-25


    EP #16 오뒷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의 숨겨진 힘


    글_노명우(사회학자)
     

    「페넬로피아드」, 마거릿 애트우드 저/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2005
     

    오뒷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를 떠나 트로이로 갔다. 그가 떠난 지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아들 텔레마코스는 성장했지만, 부재하는 아버지의 자리를 온전하게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그는 유약하다. 가부장 오뒷세우스의 부재를 틈타 이권을 챙기려는 남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청혼을 구실로 왕이 없는 이타카 궁전에서 호의호식한다. “그때 거만한 구혼자들이 들어왔다. 그들이 등받이의자와 안락의자에 순서대로 앉자 전령들은 그들의 손에 물을 부어주고 하녀들은 그들 앞의 바구니에 빵을 수북이 쌓아놓았으며, 젊은 시종들은 희석용 동이들에 술을 넘치도록 가득 채웠다. 그러자 그들은 앞에 차려진 음식을 손을 내밀었다”(오뒷세이아, 1: 144-149)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텔레마코스는 단독으로 구혼자와 대결할 수 없다. 그는 유약하다. 가부장 오뒷세우스의 귀향만이 그가 생각하는 해결책이다. 아버지 오뒷세우스가 돌아와야만 못마땅한 구혼자를 물리칠 수 있으리라 믿는 그는 20년 동안 소식이 없는 아버지의 행적을 수소문하러 여행을 떠난다. 떠나는 날 그는 이타카의 백성들에게 연설한다. “우선 나는 훌륭하신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일찍이 이곳에서 여러분의 왕이셨고 아버지처럼 상냥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훨씬 더 큰 불행이 닥쳐 내 집을 갈기갈기 찢고 내 살림을 몽땅 결딴내려 하오”(오뒷세이아, 2: 46-49) 그 불행은 다름 아닌 구혼자들의 재산 탕진이다. “그들은 날마다 우리 집에 와서 소와 양과 살진 염소들을 잡아 제물로 바치고 잔치를 벌이며 반짝이는 포도주를 마구 퍼마시고 있소이다. 그래서 그 많던 살림이 결딴나고 말았소. 이 집의 파멸을 막아줄 오뒷세우스 같은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지요.”(오뒷세이아, 2: 55-59). 그는 영웅이자 가부장이자 왕이자 아버지인 오뒷세우스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구혼자들의 만행을 고발한 그는 이 연설 끝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그는 영웅에 의한 구원을 기다리는 유약한 존재이다.

    영웅에 의한 구원을 기대하는 유약한 존재이면서 텔레마코스는 어머니 페넬로페에겐 가부장을 모방한다. 구혼자 문제를 혼자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면서도 그는 페넬로페를 마치 어른이 아이를 나무라듯 대한다. “어머니께서는 집안으로 드시고 베틀이든 물레든 어머니 자신의 일을 돌보시고 하녀들에게도 가서 일하라고 하세요. 연설은 남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제 소관이에요. 이 집에서는 제가 주인이니까요”(오뒷세이아, 1: 356-359) 페넬로페는 시중드는 여인들을 데리고 자신의 이층방에 올라가 베틀에 앉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 길을 떠나 아들도 부재한 이타카에서 홀로 구혼자와 맞선다.

    지금은 자리를 둘러싼 남자들의 싸움이다. 페넬로페는 생각한다. 홀로 버텨야 한다. 아들도 믿을 수 없다. 페넬로페는 결심한다. “물처럼 행동하자. 저들에게 맞서려고 하지 말자. 저들이 나를 붙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거다. 바위를 에둘러 흐르는 물처럼 살자”(페넬로피아드, 135) 아들 텔레마코스는 남성적 방식으로 구혼자와 맞선다. 텔레마코스는 구혼자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무력뿐이라 생각한다. 그 무력이 자신에게 부재한다. 그래서 텔레마코스는 아버지 오뒷세우스를 기다린다. 페넬로페는 시아버지 라에르테스의 수의를 만들겠다고 구혼자들에게 선언한다. 시아버지의 수의가 완성된 이후에야 새 남편을 고르겠다고 한다. 겉으로 보면 무력한 선택이다. 페넬로페는 정말 힘이 없는 것일까?

    아이소프 우화에 등장하는 바람과 해의 알레고리가 생각난다. 어느 날 해와 바람이 누구의 힘이 더 센지를 걸고 내기를 했다. 힘의 크기를 판단하는 기준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 벗기기이다. 바람이 먼저 시작했다. 바람은 거센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거센 바람으로 나그네의 옷을 벗길 심산이다. 바람이 거세지자 나그네는 옷을 여민다. 바람이 세질수록 나그네는 더 단단히 옷을 여몄다. 결국 바람은 실패했다. 바람은 자신의 힘만 생각했지 나그네의 반작용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번에는 해의 차례다. 해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해는 볕을 나그네에게 쪼인다. 햇볕이 강해지자 나그네는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자기 손으로 옷을 벗는다. 강한 바람은 내기에서 졌다.

    페넬로페는 구혼자를 물리칠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페넬로페는 무력(無力)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의 유무는 그 힘을 측정하는 기준이 달라진다. 바람에 비해 무력해 보였던 해가 결국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데 성공하지 않았던가. 구혼자는 세력(勢力)을 형성했다. 세력을 형성한 집단에 맞서려면 무력(武力)이 필요하다. 페넬로페는 무력(武力)이 없다. 아들 페넬로페도 무력(武力)이 없다. 무력(武力)은 오로지 오뒷세우스에게만 있다. 그렇다면 페넬로페는 오로지 무력(武力)이 있는 오뒷세우스의 귀향만을 기다려야 하고, 오뒷세우스만의 힘에 의해서만 해방될 수 있는 무력(無力)한 존재인가? 페넬로페는 왕비라는 권력(權力)을 지니고 있지만, 무력(武力)이 부재한 권력(權力)은 허망하다.

    무력(武力)이 없어 권력(權力)조차 위협받고 있는 페넬로페는 세력도 권력도 무력도 아닌 다른 힘으로 구혼자에 저항한다. 그 힘은 능력(能力)이다. 수의가 완성되어야만 결혼할 것이라는 페넬로페의 공언은 계약의 빈틈을 노리는 꾀로 무장한 능력의 밑바탕이다.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이 보는 앞에서는 수의를 짠다. 그리고 밤이 되면 낮에 짠 수의를 푼다. 페넬로페의 공언을 통한 계약에는 수의가 완성되면 결혼할 상대를 정한다였기에 밤에 낮에 짠 수의를 풀어 수의가 완성을 끝없이 유예시키는 페넬로페의 꾀는 계약 위반은 아니다. 계약 속엔 짰던 수의를 풀어 수의의 완성을 지연시키면 안된다는 규정은 없다.

    부당한 상황 속에서 부당한 요구에 노출되었을 때 권력도, 무력도, 세력도 없는 존재라면 그저 힘없는 상태 즉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페넬로페의 아들 텔레마코스처럼 영웅에 의한 대리 해방에 희망을 둘 것인가? 수의를 짜고 짰던 수의를 푸는 페넬로페는 무기력과 영웅에 의한 대리 해방이라는 오래된 남성적 양자택일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선택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페넬로페는 꾀로 부당한 세력이 승리하는 것을 끝없이 유예시키는 능력이라는 힘을 지닌 존재이다. 볼테르가 <깡디드>의 마지막에서 부당함으로 가득 한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건네준 조언이 다름 아닌 우리는 각자의 정원을 가꿔야 한다가 아니었던가. 페넬로페는 베틀로 자신의 정원을 가꾸며 부당한 세력에게 최종적 승리의 순간이 도래하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다. 페넬로페의 유예 전략 앞에서 구혼자들은 참으로 무기력하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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