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TITLE

    [장동석의 천변만화(千變萬化)] 요괴, 아니 욕망하는 우리 그 자체관리자2022-05-25


    요괴, 아니 욕망하는 우리 그 자체


    글_장동석((재)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 평론가)

     


    「요망하고 고얀 것들」, 이후남 저, 눌와, 2021


     

    성정(性情)이 반듯하지 못해서인지, 종종 괴이한 것들에 끌린다. 혹 너무 반듯해서(?) 일탈을 꿈꾸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괴이한 것들이 발산하는 매력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다들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에 열광하지만, 그 히어로를 있게 한 악당에게도 한번쯤 눈길이 가는 것 말이다. 악당이 매력적이어야 그와 대적해 정의를 지키고, 지구를 수호하는 히어로가 멋진 법 아닌가. 그러니 괴이한 것에 끌리는 건 인간이라면 당연한 본성일 터.

    고전소설 연구자 이후남의 <요망하고 고얀 것들>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괴이한 일들은 일삼은 요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요괴가 민간 전래 요괴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우선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더 중요한 특징도 있다. 고전소설의 요괴는 인간과 같이 욕망을 지닌 존재들이다. 욕망도 다종다양(多種多樣)하다. “식욕 같은 원초적 욕망은 기본이고 재물을 갖고픈 욕망, 사랑받고 싶은 욕망, 명예를 누리고 싶은 욕망,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고차원적 욕망까지, 사실상 끝이 없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가 요괴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저자가 수집한 요괴 등장 고전소설은 모두 77편이고, 요괴 수는 무려 158종이나 된다고 한다. 그중 본능에 충실한 요괴를 먼저 만나보자. <윤하정삼문취록>(尹河鄭三門聚錄)에 등장하는 멧돼지 요괴는 엄청난 먹성을 자랑한다. 송나라 사천 지역 뒷산인 낙봉산 봉두혈, 즉 인간 세계와는 외따로이 살지만, 시시때때로 인가로 내려와 민폐를 끼쳤다. 지역의 가장 큰 행사의 제사 음식을 모조리 먹은 것도 모자라 농작물은 물론 인간까지 가리지 않고먹어치웠다. 4~5년 지속된 멧돼지 요괴의 횡포로 사천은 황무지가 되어버렸다고 소설은 전한다. 멧돼지 요괴는 무작정 많이만 먹는 요괴였찌만,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대개의 요괴들은 인간들에게 풍성한 제사상을 차리도록 위협한다. 겁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두지만 정작 먹는 모습을 드러내는 요괴는 없다. 저자의 말이다. “배를 채우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제사 음식을 차려 제를 올리고 공경하는 대접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요괴들도 인정욕구에 불타는 존재, 곧 인간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돈 모으는 재미에 푹 빠진 요괴도 있다. <명주보월빙>(明珠寶月聘)에 등장하는 여우 요괴 신묘랑은 재물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3000년 묵을 여우인 신묘랑은 여도사로 변신해 서촉 청성산 아래에서 암자를 운영했다.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있는 암자는 대개 불도를 닦는 도량이지만, 신묘랑의 암자는 점을 봐주고 돈을 버는 상업적 장소였다. 복채를 두둑하게 내지 않는 사람은 만나주지도 않았다. 철저하게 액수를 따져 손님을 가려 받은 것이다. 문제는 암자에만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납치, 살인, 살인 미수, 방화, 환약 사용, 모함, 신분 위조, 탈옥등의 악행도 저질렀다. 신묘랑은 왕실, 사대부 등의 거액을 받고 원한진 사람들에게 악행을 저질렀다. “어디까지나 돈을 벌려고악행을 일삼은 것이다. 신묘랑은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만, 변변한 곳에 사용하지는 못했다. 그저 소유하는 것 자체가 좋았을 뿐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더 탐내는, 매사를 돈과 연관 짓는 인간의 얼굴이 다시 떠오르지 않는가.

    인간 역할에 몰입 혹은 집착한 요괴도 있었다. <유이양문록>(劉李兩門錄)에 등장하는 호미아는 꼬리가 일곱 달린 여우 요괴다. 호미아의 스승은 벽진이라는 여우로 꼬리가 무려 아홉 개였다. 호미아는 황후 윤씨의 이복동생 윤운빙이 억지로 결혼한 집에서 미움을 사 도망쳐 나오자 이내 수양딸로 삼는다. 그런 윤운빙이 연모하는 남자가 생기자 세 개의 신비한 약을 써서외모와 신분을 완벽하게 세탁해 주기도 한다. 호미아는 상당히 헌신적인 모성애를 보이며 윤운빙과 유부남인 유세창을 이어주려고 갖은 악행을 저지른다. 심지어 자기 몸을 쇠채찍으로 마구 치는 고통까지 감수한다. 끝내 정체가 들통나면서 호미아와 벽진은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호미아는 인간이 되고 싶었고, 어미가 되고 싶었다. 어렵게 얻은 딸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해치면서까지말이다. , 또 우리 인간의 모습이 저만치에 서 있는 듯 하지 않은가. 자식 잘 되라고 불의에 눈 감고 편법과 불법마저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어떤 부모의 모습에 호미아가 겹친다.

    숭배받기 원한 요괴도 제법 많았다. <삼한습유>(三韓拾遺)에 등장하는 붉은 용, 즉 적룡은 백제를 지키는 강의 신이었다.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해 백제를 섬멸하고자 할 때 적룡은 온갖 신비한 능력을 사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의자왕은 적룡만 믿고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적룡은 백제가 망하는 지름길을 열어준 셈이다. 적룡의 마지막은 허무했다. 흰 말을 미끼삼아 낚시질로 적룡을 잡은 당나라 소정방은 적룡을 뽕나무에 묶어 때려죽인다. 적룡은 무엇 때문에 백제를 지키려고 한 것일까. 사실 적룡을 백제에서만 수호신일 뿐, 신라 입장에서 보면 사악한 요괴에 지나지 않았다. 백제가 망하면 자신의 존재도 사라진다. 제사를 지내줄, 즉 숭배할 사람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이다. “결국 적룡이 끝까지 백제를 놓지 않은 이유는 존경받고자 하는 욕구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두 말하면 입만 아프다. 알량한 힘이라도 있으면 누군가에게 특별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우리 아닌가.

    드물게 새 삶을 얻어 행복한 존재로 거듭난 요괴가 없지 않았다. 인간 세계에서도 그런 일은 드문 것처럼 말이다. <요망하고 고얀 것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스무 명의(?) 요괴가 등장한다. 곱씹어 보면 하나같이 인간의 모습과 겹친다. 어쨌든 인간의 분방한 상상력에서 태어난 존재들 아닌가. 요망하고 고얀 요괴 이야기라고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같이 욕망덩어리인 우리 인간, 아니 내 모습과 닮았다. 스스로의 모습이, 성정이 궁금하다면 <요망하고 고얀 것들>을 지금 당장 읽어볼 일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