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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테마추천]'셀럽들'의 책읽기 - 알베르토 망구엘, 한기호, 다치바나 다카시
작성자 현호섭
등록일 2017-09-29
조회수 605
첨부파일




 


'셀럽들'의 책읽기
<알베르토 망구엘, 한기호, 다치바나 다카시>



글_현호섭(SNS 독서 홍보단)



► 우리시대 독서의 대가들

세계 3대 테너가 있었다. 20세기 말에 세계 무대를 주름잡은 성악의 대가들이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이 세명의 거장이 함께 출연하는 성악무대는 이제 전설이 된지 오래다.  한 명은 저 세상으로 떠났고, 나머지 두 명은 너무 늙어 거의 무대에 서지 못한다. 하지만, 전성기 때 오른 무대에서 그들이 보여준 하모니와 개성, 호흡은 완벽에 가까웠다. 그들에 버금가는 또다른 패밀리가 아직 등장했다는 소릴 듣지 못했다.  세계 3대 테너는 이제 고유명사로 굳어졌다. 그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던 시대를 살았던 동시대의 사람들은 행복했다.  전설과 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행운에 다름아니다. 

 

독서의 세계에서도 대가들은 존재한다. 세계 3대 독서의 대가들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출판평론가이며 <기획회의>, <학교도서관저널>을 펴내며 풀뿌리 독서운동에 앞장서온 독서가 한기호, 일본에 고양이 빌딩이라는 서재에 장서 20만권을 보관하면서 저널리스트이자 서평가로 활동하는 다치바다 다카시다. 명불허전의 세계 3대 열혈 독서가들이다. 물론 `세계 3대'는 누가 정했느냐 굳이 묻는다면, 그것은 내 맘대로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들의 오랜 독자였으니까.  그들은 책에 관한 애정이 가득 담긴, 서평집과 독서론을 책으로 펴내왔다.  나는 다양한 주제로 책을 읽지만, 독서라는 하나의 주제를 담아낸 책들도 좋아한다. 그 가운데, 이 세 분의 평론집을 감명깊게 읽었으며, 국적도 다르고 독서취향도 다르지만 책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들 세 명은 비교우위를 가름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느 분야에나 명장들이 있다. 책, 어떻게 고르고, 읽고, 다루어야 하는지 알고 싶다면 `셀럽들'의 책읽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일생 직업적으로 책을 읽어온 사람들이다. 물론, 직업 이전에 책과 문자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하지만, 그들의 책에 대한 원초적인 사랑은 초보독자들도 품을만한 열정 그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이것이 그들과 우리를 잇는 고리 아닐까.  일생 책을 선택하고, 읽고, 보관하고, 정리해온 셀럽들의 노하우에서 책읽기의 근본을 공부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제 그들의 대표작을 한 권씩 만나보자. 



► `셀럽들'의 책읽기를 만나다

 

1. 알베르토 망구엘 <책 읽는 사람들> - 무엇을 위해 책을 읽는가

 

 

 

무엇을 위해 독서하는가?  또 무엇을 위해 책을 모으는가? 독자들은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봐야 한다. 어떤 행위의 목적을 생각해본다는 건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불꽃같은 의욕이 솟구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문장 한 줄 읽는 것도 지치는 날이 오고, 모든게 회의로 치닫는 시절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 독자는 항상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준비해둬야 열정의 불꽃을 꺼트리지 않고 인생 전체를 책과 함께 할 수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책을 읽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의 직함은 다양하다. 소설가, 작가, 편집자, 번역가 등. 더군다나 그는 세계시민이었다. 남미의 불운한 정치적 환경에서 태어나 학창시절 조국을 탈출해, 유럽의 여러나라와 미국, 캐나다 등으로 삶의 영토를 바꿔왔다. 여러 매체에 기고한 책과 독서, 인물과 자신의 삶을 다룬 글을 묶어낸 <책 읽는 사람들>(교보문고, 2012)은 일평생 그가 전념해 온 독서와 책에 대한 열망의 후기다. 난 그가 다양한 직함 가운데 `독자'로 불리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젊은 시절 해외를 방랑하며 궁핍한 삶을 살아가던 그는 상금 욕심에 문학상에 소설 한 편을 응모해 당선되지만, 자신에게 작가보다는 독자로서의 삶이 맞다고 생각해 소설가의 길과 멀어진다.

 

한 편의 소설을 분석하며 그에 연관된 소설의 목록을 쉴새없이 토해내는 글쓰기에서 우린 독자로서 탁월한 망구엘의 재능을 확인하게 된다. 일평생 무수한 책들을 읽고, 그 후기를 적고, 개인 도서관을 만들어 소장한 책과 독서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든 십수 편의 글들을 읽으며 발견한 가장 인상적인 주제는 `이상적인 독자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창작과 고뇌의 상징인 작가는 독서의 세계에서 언제나 `갑'의 위치에 있는게 정당한 걸까?  독서는 주어진 텍스트를 읽어내려가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가? 육십 평생 세계를 떠돌며 세계시민으로서 책을 읽어온 망구엘의 답은 의외였다.

 

"이상적인 독자란?"이란 타이틀을 단 글에서 그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짧고 다양하게 변주해 나간다. 망구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독자에 대한 답을 몇 가지 옮겨보자.

 

" 이상적인 독자는 창작의 순간보다 앞서 존재한다 "

" 이상적인 독자는 텍스트를 절개해서 껍질을 들어내고 골수까지 파들어가, 동맥과 정맥을 일일이 추적해서 완전히 다른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번역가다. 이상적인 독자는 박제사가 아니다."

" 이상적인 독자는 책을 덮을 때마다, 자신이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세상이 더 불행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 이상적인 독자는 돈키호테의 윤리관, 보바리 부인의 열망, 바스 여장부의 욕정, 오디세우스의 모험정신, 홀든 콜필드의 기개를, 적어도 이야기를 읽는 동안에는 공유한다."

" 이상적인 독자는 밟아 다져진 길을 걷는다. `훌륭한 독자, 뛰어난 독자,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독자는 다시 읽는 사람이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로빈슨 크루소는 이상적인 독자가 아니었다. 그가 성경을 읽은 이유는 답을 찾기 위함이었다. 이상적인 독자는 의문을 찾아내기 위해 책을 읽는다 " 알베르토 망구엘 125~127 쪽, <책 읽는 사람들>

 

그는 책읽는 사람들의 능동성을 강조한다. 주어진 텍스트에 오직 만족하는 것은 망구엘이 생각하는 독서가 아니다.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 개인소개란에서 취미를 독서로 기재하는 것은 이제 넌센스가 돼야 옳다. 책과 독서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가닿는 그의 결말은 놀랍도록 요즘의 내 생각과 비슷했다. 책이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재료이고, 독서가 그 행위라는 것 말이다. 취미는 개인의 향락에 머물지만, 독서는 향락을 넘어선다. 독서는 이 세상을 지배했던 정치적 잔혹 행위를 `기억'하는 도구가 되며, 온갖 위협과 광기의 `피난처'가 된다. 독서는 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며, 그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도운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할 때, 누구에게도 인도받지 못한다는 당혹감이 밀려올 때, 우리는 글이 쓰인 곳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는다' 독서가 갖는 위로의 힘이다.

 

"이상적인 도서관에서 독자의 역할은 기존의 질서를 뒤짚는 것이다" 143쪽

 

이 책은 놀랍도록 깊고 확장적인 독서의 힘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망구엘은 우리 시대 정치인과 혁명가(체게바라)를 검토하고, 문학과 독서에 대한 영감을 주었던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의 기억을 되살린다. 단테와 피노키오 그리고 돈키호테의 작품과 인물들을 샅샅이 살피며, 어린 시절 읽어냈던 동화(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한 편의 세계관에서 독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성실히 책을 읽어온 그는 조국 아르헨티나의 정치사를 가장 정확히 꿰뚫어보고, 서양 고전을 통해 인간이 나아가야 할 삶을 인문적으로 고찰할 능력을 뽐낸다. 그는 문필가로서보다 평범한 독서가로서 자신의 이력을 더 사랑하며, 이 책을 읽는 누구에게나 인문주의자 망구엘의 삶을 선망하게 한다.

 


2. 한기호 <마흔 이후 인생길> -  책, 그대 인생의 터닝포인트 

 

 

교양도서(고전) 100권, 관심분야 도서100권으로 누구나 삶을 재설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출판 마케터와 출판 평론가로 30년 동안 출판계에서 종횡무진해온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이다.  그는 신작 <마흔 이후, 인생길>(다산초당,2014년)에서 독서 200권을 통한 100세 시대 은퇴설계 방법과 마흔 이후의 인생 2막 40년을 준비하는 독서론을 설파한다.  독서 200권은 결코 많지도 적지도 않다. 지난 10년간 내가 느리게 읽고 써낸 서평은 겨우 300편 남짓이다. 10년간 꾸준히 읽어왔는데도 그 정도다.  그는 "어떤 분야든 입문서에서 전문서까지 100권만 읽으면 전문가 못지 않은 안목을 갖출 수 있다"고 말한다. 이후, 고전 100권을 더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을 근본부터 이해하기 위해서란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인문학으로 약칭되는 것이 고전 100권이다.

 

마흔 이후가 됐든, 은퇴후가 됐든, 사람은 정말 책 200권으로 삶을 재설계 할 수 있는 걸까?  삶을 바꾸는 데 책은 어떤 역할을 하며 대체 사람들은 왜 책을 읽어야 할까?  저자는 출판평론가로 일해오며 수많은 책을 읽고 출판 시장의 흐름을 짚어왔다.  이 책엔 저자가 출판계에 발을 들여논 시점부터 세상을 쥐고 흔든 책이 소개되며, 그 책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왔는지 분석하는 안목이 드러나 있다.  저자에게 책을 읽는 일은 출판시장의 동향을 통해 사회를 읽고 사람들의 심리를 읽고 그들의 궁핍을 읽고 미래를 읽는 일이었다.  또, 그것은 감추어진 책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일이었고 한 권의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삶을 바꿀 수 있는지 파악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가 그 오랜 시간 책을 읽어오며 얻은 확신은 책이 사람의 인생에 개입한다는 점이다.

 

"일반 교양은 원래 `리버럴 아트(liberal arts), 즉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학문'이라고 부릅니다.  교양은 어떤 상황에서도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세상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방법론을 담고 있기에 인간성이나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양질의 인맥을 형성하게 만듭니다. 좋은 지인, 좋은 친구가 늘어나면 이루지 못할 일이란 없는 법이 아닌가요? " 11쪽, 한기호 <마흔 이후, 인생길>

 

책과 동고동락한 30년 내공을 통해 저자는 책 200권을 섭렵한 독자가 자신의 삶을 재설계할 수 있는 근거와 방법을 풀어낸다. 저자에 따르면, 고도 성장기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대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었다.  열아홉에 `스카이'에 입학하고, 졸업후 대기업에 입사하기만 하면 퇴직까지 고용이 보장되며, 연공서열에 따라 승진도 순풍에 돛단배 같아서 중산층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지금은?  한해 석,박사만 수만명을 배출하지만 스카이가 아니라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렵다.  60세 정년은 옛말이고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으로 고용이 흔들린다.  운 좋게 정년을 다 채운다해도 60세 이후, 100세까지 40년을 더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왔다. 인생 2막에 대한 준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30대는 싸고 품질 좋지만 조립해서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스웨덴 가구 이케아를 닮았다 해서, `이케아 세대'라 불린다. 고용불안에 지치고 미래가 암담해 절망에 빠진 이케아 세대는 취업,연애,결혼,출산,양육이라는 정규코스를 거부하고 `지금 이 순간 잘 사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부모세대는 스펙을 쌓으라고 강요했지만 이젠 스펙으로도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그들은 성공을 꿈꾸며 자기계발서를 탐독한 세대기도 하다.  학교는 어떤가?  스마트폰으로 인류가 생산한 모든 지식과 접속할 수 있는 시대에 아이들을 하루 16시간씩 형틀에 묶어놓고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을 외우게 하는 것이 교육의 실상이니, 학교를 폐쇄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선진국의 대졸자들은 인도나 중국같은 신흥국의 대졸자에게 고급 노동력을 염가할인하는 역경매 방식, `글로벌 옥션'으로 일자리를 빼앗긴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학벌과 스펙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을 양산해내는 교육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세상이 원하는 인재의 가치 기준이 바뀌어가고 있단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전문지식과 스펙은 산업구조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전공지식과 스펙이 무용지물이 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세상은 이제 `엑스퍼트'가 아닌 `프로페셔널'을 요구한다. 정보나 단순 지식을 검색하는 것은 스마트폰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지식을 편집하고 통찰하며 거기서 중요한 컨셉을 끌어내는 힘은 오직 다양한 책을 읽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차별적 능력임을 저자는 지적한다.

 

<마흔 이후, 인생길>에서 저자는 책읽기야말로 총체적 난세를 벗어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선포한다.  저자는 책읽기가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고 한 권의 사소한 책이 누군가의 운명을 바꾸며 단 200권의 책을 통해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지난 십수년의 직장생활을 돌아보니 그 사이 읽어온 책이 삶을 바꿨고 지금도 바꾸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꿈을 선물하고 꿈을 키우게 한 것도 책이었다.   책, 그것은 평범한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기회이자 우리 인생길의 터닝포인트다.

 


3.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 다카시처럼 읽고 써라
 

 



일본의 유명한 독서가이자 서평가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청어람미디어, 2001)는 책읽기와 글쓰기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유익한 책이다.

1980년대에서 90년대 독서 인생과 경험을 담아낸 이 책에서 다치바나 다카시는 한마디로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독서광의 일상을 그려보인다.  한해 수 천 권의 책을 읽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는 국내 언론에도 소개된 책으로 가득한 4층짜리 `고양이 빌딩'의 건물주이자 전공을 넘어서 다채로운 주제로 수많은 책을 펴내고 있는 저술가다.   서평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책을 읽었고 중,고교 시절엔 이미 세계문학과 일본 문학을 독파할 정도로 조숙했다.  대학을 졸업후 잡지사에 얼마간 근무한 것을 빼고 그는 프리랜서 독서가이자 서평가로 일생을 보내왔다.  이 책의 한 단락인 `퇴사의 변'에서 그는 자신의 책읽기를 이렇게 고백한다.

"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은 할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내 경우, 하고 싶은 일이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생각에 잠겨 보는 것뿐이다. " 그 정도라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 아니냐?" 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 좀더 참아 봐.  다른 편집부로 옮기면 책은 얼마든지 읽을 수 있을 거야"라고 충고해 주는 사람도 몇 있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서재의 서가 앞에 앉으면 언제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초조함이 엄습해 왔다." "  183쪽,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하여,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독서가이자 서평가 혹은 저술가의 길을 갈 것을 다짐한다.  밀린 책을 읽기 위해 본업을 포기한 사람이 바로 다치바나 다카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그가 `하고 싶은 일'이었으나 그걸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짓은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일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열정을 따라할 수 있을지언정 그가 걸어온 삶을 흉내내기란 쉽지 않다.  일본은 잡지발행이 단행본 출판보다 더 일상화된 나라다. 그가 이 책을 썼던 198,90년대는 특히 일본 잡지의 전성기여서 잡지사에 실릴 양질의 원고는 공급부족 상태였다. 그는 바로 잡지사의 수요에 발맞춰 훌륭한 원고들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그는 한편의 원고를 쓰기 전에 100편 이상의 참고 자료를 읽는 원칙을 정해놓고 작업했다.  많은 자료를 먼저 읽는 것이, 좋은 원고를 만든다는 변치 않는 법칙 하나를 독자는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세계적인 독서가로서 그가 제시한 14가지 독서법도 흥미롭다.  그는 이것을 취미를 위한 게 아니라 일반 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법이라 주장하는데, 주된 내용 몇 가지만 살펴보면 이렇다. 

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책 한 권에 들어 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으로 입수하려면 그 몇 배의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는 믿는다.  하나의 주제를 공부하기 위해선 몇 권의 입문서를 찾아 읽어야 한다 . 책 선택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수업료로 생각하고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억지로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니 읽다가 포기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독만 고집해선 일생동안 만날 수 있는 책이 한정 돼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 특징은 속독법으로 다양한 종류의 책을 빠르게 읽고 정독할 책과 통독할 책을 선별하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며 읽어야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젊은 시절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라고 당부한다.

" 나는 책이란 만인의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대학에 들어가건 사람이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대학에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한다면 인간은 결국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을 나왔건 나오지 않았건, 일생 동안 책이라는 대학을 계속 다니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책이라는 대학에 지속적으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다니고 있다 "   286쪽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평생 모은 책으로 거대한 지의 왕국을 세웠다. 그가 기획하고 친구에게 설계를 맡긴 `고양이 빌딩'안에는 수만권의 장서가 보관돼 있다.  비좁은 공간을 훌륭한 개인 도서관이자 집필실로 꾸민 모델이다. 누구든 뜻만 있다면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이런 건물은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독만이 진정한 독서라고 고집해온 내게 다카시의 속독과 통독법에 대한 유연한 사고도 참고할 만 했다.  정독만으론 1년에 50권 읽기도 벅찬게 현실이다.  만약, 다카시 같은 방법을 쓴다면 1년에 그 10배를 읽는 일도 가능할 것이고 진짜 보배같은 책을 만날 확률도 더 늘어날 것 같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그에 100배에 해당하는 자료를 읽는다는 다카시의 집필 방식은 게으른 서평가들에게 모범이 될 것이다.

 

 
 


► 나의 독서론 - 책 읽고 글쓰기는 길의 탐구다 

먼저 말해둘 것은 나는 위 세 분과는 전혀 비교 할 수 없는 일반 독자이자 아마추어 서평가다. 전업 독자도 전문 서평가도 아니어서, 내겐 본업이 따로 있고 그것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 막장까지는 아니지만 밑바닥 생활을 경험해서인지 지금의 내 본업이 얼마나 소중한지 충분히 알고 있고, 내가 아무리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내 생활을 지탱하는 본업을 내팽개칠 이유도, 용기도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세계 3대 독서가들'처럼 책과 독서에 대해 발언하는 내 말에는 무게감이 덜 실릴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독자들처럼 평범한 생활인의 위치에서 얘기할 수 있기에 더 공감가는 독서론을 어쩌면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본격적인 책읽기에 나선 것은 22살 무렵이었다. 요즘처럼 독서가 장려되는 시절도 아니고, 논술이 입시에서 중요시되던 때도 아닌지라 학교에서 책읽기를 강조하는 것은 연례적인 행사같은 것이었다. 마치, 11월이 되면 불조심을 하라는 포스터가 학교 게시판에 붙는 것처럼 말이다. 22살 그 무렵까지 내가 학창시절에 읽은 책은 동화책, 만화책 다 포함해서 50권도 채 안 되었을 것이다.  일생말이다!  문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란게 오직 교과서와 참고서가 다였다.  그렇다면, 나는 22살 즈음에 어떤 계기로 책을 읽게 되었는가.  간단히 말해, 늦은 사춘기 같은 청춘의 열병을 앓고 나서였다.  그것은 철학적인 물음들이 내면에서 용솟음치던 그런 시기였고, 그런 질문들에 답하기엔 나의 내면은 지극히 빈약했다.  

내가 만약 종교가 있었다면 그러한 의문들은 쉽게 처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종교는 철학적인 질문들에 언제나 확답으로 응수한다.  하지만, 나는 일찍이 종교에는 관심도 없었고 음주가무처럼 따라배우려 해도 배울 수 없는 선천적인 거부반응이 내면화 돼 있었다. 그래서, 삶이 표류하는 지점에서 눈에 들어온 한 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게 어떤 책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책 한 권 이후로 근 20여년 동안 문자의 세계를 방랑하게 되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그런 심오한 이유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일생동안 책을 계속 읽어나갈 추동력은 되지 못한다. 그 이후 곧바로 다른 이유가 생겼는데 바로 `글쓰기에 대한 욕망' 이다.  간단히 말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해서 책을 읽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PC통신 바람이 불었다. 오늘날 인터넷의 시초라고 보면 될 것인데, 하이텔과 천리안, 나우누리 등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PC통신은 당시 획기적이었는데, 무엇보다 컴퓨터를 이용해 거리와 시간의 제약을 벗어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PC통신의 주요한 서비스는 채팅, 게시판, 동호회, 컴퓨터 자료실 등이 인기가 있었다. 그 가운데, 내가 주로 이용한 게시판은 하이텔의 독서(READING)란 이었다.  그 게시판에는 주로 서평이 올라왔는데, 책에 대한 다양한 독후감이 매일 업데이트 되었다. 그곳에 올라온 쟁쟁한 글쟁이들의 서평을 읽을 때마다 글쓰기의 열등감에 상심이 컸다. 어떻게 하면, 그들처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스스로 내 놓은 답이 바로 책읽기다.  그 시절, 나는 주로 철학,고전 등의 분야를 집중해 읽고 서평을 썼다. 

몇달 뒤, 리딩란에 올라온 독후감을 골라 하이텔에서 고전,철학 분야 좋은 독후감으로 선정해 내게 상을 주었다. 글쓰기를 통해 받은 최초의 상이었다.  책을 읽으면 글을 잘 쓸 수 있고, 더군다나 상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 직장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내가 받은 상의 대부분은 글쓰기와 관련돼 있다.  청춘의 불안과 고뇌에서 시작된 책읽기가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비상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선택하고, 일독해서, 서평을 남기는 일이 인생에서 하나의 사명 같이 느껴진 것은 그 때 였다. 더군다나, 책을 읽고 글을 쓸수록 내 글은 좀 더 나아진다고 상상했다. 나는 책이 좋아서 책을 읽었고, 글쓰기의 매력을 발견해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책과 글쓰기의 선순환이자 공생관계의 서막이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내 경험을 설명하는 것은 책읽기와 글쓰기가 뗄 수 없는 상호작용을 하는 하나의 과정이란 얘길 하고 싶어서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어떤 작가도 처음부터 자신의 글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남의 글을 열심히 찾아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20대의 대부분을 선술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 살았으나, 한순간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신들린 듯 책을 읽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의 어린 시절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모두 국어교사라서 집에는 책이 많았고, 그때부터 그는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그러나, 선술집의 사장님은 새벽시간 키친테이블에서 소설을 끄적거리며 자신의 글을 써보겠단 꿈을 놓지 않았다.  공자는 <논어>에서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 이치를 안게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그것을 추구한 사람이다"고 언명한다. 또, "나는 온종일 먹지도 않고 밤새도록 잠자지 않고 생각해보았지만, 유익함이 없었고 배우는 것이 더 나았다"고 표현한다. 모두, 먼저 책을 찾아 읽고 궁리한 끝에 자신의 글을 쓰고 사상의 일가를 이룰 수 있었다. 

책읽기와 글쓰기의 결국 하나다.  22살 무렵, 늦은 나이로 책벌레가 되었지만 이러한 지적인 세계에 입문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세상에는 책읽기나 글쓰기보다 더 말초적인 쾌락이 얼마나 즐비한가?  하지만, 이것만큼 도덕적이며 깨끗한 취향도 찾기 힘들다. 그 이후, 나는 세상과 부대끼며 그 두가지 일을 소홀히 했지만 한번도 머릿속에서 그것을 언젠가 잘 해보겠단 꿈을 잊은 적이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일에는 완성이 없다. 책읽기와 글쓰기의 완성이란 불가능 하다. 작가에게 최고의 글은 지금 쓰여지고 있는 글이란 얘기가 있다. 그 전까지 썼던 모든 작품들은 사람들이 아무리 칭찬해주어도, 작가에겐 불만족스럽기 마련이다. 하여, 그는 지금 또다른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책읽기도 마찬가지다.  양서의 리스트를 만들 수는 있다.  세계고전목록처럼, 우리가 일생 만나보아야 할 책은 추천목록으로 다 나와 있다. 하지만, 독자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개성이 다른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추천목록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읽어보아야 할 고전 같은 추천목록은 허무맹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작가가 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타인의 생각을 흡수하고,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 그것을 글이란 수단을 통해 표현해 내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그 가운데, 작가는 직업적인 개념이 앞서는 것이고 일반 독자는 수준높은 지적 능력을 일생 개발하는데 있어 책읽기와 글쓰기가 훌륭한 방편이 된다는 점이다. 사람을 가치있게 하는 것은 경제적인 능력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이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 흔한 노숙자에게 소주병이 아니라, 책 한 권이 들려 있다면 우린 그 사람을 다르게 볼 것이다. 책이란 사물은 사람을 회복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유럽의 문명사가 `바이블'이란 책 한 권으로 정의될 수 있고, 동양의 지성사가 `논어'라는 책으로 복기될 수 있는 것처럼, 책 한 권이 가진 힘은 막강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성인 독서율은 매년 추락하는 형국이다. 사람들은 도서정가제에 반발해 책 사기를 주저한다. 책값이 많이 올랐다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보통의 직장인들이 한달에 읽을 수 있는 책은 많아야 2~3권 정도다. 그 정도의 책이라면, 3~4만원이면 족하다. 가족외식비 보다 적고, 휴대폰 사용료보다 적다. 이 돈이 아까워 책을 사는데 주저한다. 그러고도, 자신의 삶에 균열이 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3박 4일동안 쉬지 않고 해서 죽었다는 청년의 이야긴 뉴스를 장식하지만, 책에 빠져 혼미한 정신상태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람은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 사회는 책 욕심이 지독히 적은 사회다.  그에 비례해서, 성인의 지적능력도 떨어지고 있다.  지적능력이 추락하면 그 사회의 정치 수준이 후퇴한다.  박물관으로 직행해야할 적폐적인 정치세력이 현 국회의석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증거다. 그들의 역사,정치,도덕적 인식과 언행은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의 정신세계를 대변하고 있다고 상상해야 옳지 않겠나?

한국 사회가 경제,문화적으로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성인직장인구의 독서율이 상승해야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냈고, 신민회, 한인애국단을 통해 일제치하 독립운동을 전개한 애국자 백범 김구 선생은 자신의 자서전 <백범일지>에서 뜻밖의 건국철학을 드러낸 바 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충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일지 中

김구 선생이 말한 문화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 사회 구성원의 교양 수준이 담보되는 기초위에서 발원될 수 있다. 교양과 지적수준은 책이란 다리를 통하지 않고는 건널 수 없는 강이다. 사람이 늙어가는 분기점은 수치적인 나이가 아니라, 지적 호기심이 고갈되는 시점이란 말이 있다. 여든 셋의 작가이자 제1대 문화부장관을 지냈던 이어령 선생은 지금도,  책으로 둘러쌓인 자신의 서재에 6대의 컴퓨터 모니터를 두고 집필작업을 한다. 여든 셋의 나이가 무색하게 얼리어댑터로서 젊은이도 따라잡기 힘든, 뉴미디어 활용능력과 왕성한 독서력으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한다. 우리가 죽을때까지 갈망해야 하는 것은 지식이며, 그것이 우리의 관심사를 기초적인 의식주에서 벗어나 수준높은 문화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는 어떻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일생 지성의 세계를 배회할 수 있을까?

대학 4년간 배운 지식으로 평생을 버텨보겠다는 것은 넌센스다. 그럼에도, 많은 직장인들이 책읽기에 소홀한 것을 가볍게 생각한다. 적은 분량이라도 책읽기에서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우리는 직업적인 독서가나 서평가가 아니므로, 책을 전투적으로 읽을 필요가 없다. 많은 양의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쓰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생활인들은 책읽고 글쓰는데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 계속적인 책읽기와 글쓰기를 추동하는 힘은 자신의 성장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블로그 글쓰기'를 추천한다.  나는 다양한 인터넷의 뉴미디어,SNS 中,  정제된 글을 쓰는 도구로 블로그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블로그와 SNS 그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글쓰기의 즉흥성이다.  트위터,인스타그램,페이스북에서 쓰는 글은 주로 스마트폰에서 즉흥적으로 글을 쓸 때, 유용하다. 

하지만,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고 깊이 있는 주제로 장문의 글을 쓸 때 블로그는 최적화된 매체라고 본다. 요즘 많은 작가들은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써 올리고, 그것을 모아 정리하여 책으로 펴내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블로그는 출판의 전초기지로서 역할을 해낸다. 블로그의 게시판 메뉴는 책의 목차로 변환되기에 적합하다. 나는 10년 넘게 블로그를 통해 서평을 써 왔다. 기껏해야 한달에 두,서너 편이다. 그 정도의 분량으로도 책읽고 글쓰기 역량을 키워가는데 부족함이 없다.  서평을 통해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연습하면서, 틈틈이 영화평을 써보는 것도 좋다. 서평과 영화평은 많은 공통점이 있다.  영화평이 서평과 차이점이 있다면, 원본이 텍스트인가 스크린인가 하는 점일 뿐이다. 책과 영화는 모두 나름의 컨텐트와 의미를 담고 있고, 그것을 언어로 풀어내는 방식은 독자와 관객의 지성이 배양된 느낌과 인상이다.

서평과 영화평을 블로그에 꾸준히 써온 이들은 이제 자유로운 글쓰기에 도전할 수 있다. 그들은 독자로서 한 권의 책을 정리하고, 요약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관객으로서 한 편의 영화를 나름의 관점에서 보고 정리하는 기법을 알고 있다. 이런한 능력과 기법을 통해, 이제 그 어떤 주제가 되었든 한 편의 글을 써낼 수 있다.  자신의 글을 논리적으로 설득력있게 써낼 수 있다면, 그것은 누구나 갖지 못한 자신만의 특기이자 재능이 된다. 그러한 능력이 개인적이자 사회적으로 숱한 기회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사회에서 그들은 희소적 재원이라는 경제적 가치를 획득한다.   책읽기가 장려되지만 역설적으로 대부분 책읽기를 기피하는 사회에서 그들은 소수의 독자일 것이다.  누구나 잘 쓰고 싶지만 실제로 글을 써보는 노력은 해보질 않는 이 사회에서, 꾸준히 책을 찾아 읽고 블로그에 글쓰기를 연마해온 그들은 이미 넘보기 힘든 수준높은 글쓰기의 경지에 올라서 있다.

하지만, 높은 교양과 수준높은 글쓰기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22살 무렵, 찾아온 청춘의 열병은 삶에 대한 회의감(懷疑感)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답을 책에서 찾았다.  인간은 의식주의 만족에 머물지 않는 유일한 동물이다.왜 밥이 되고 돈이 되지 않는 일에 몰입하는가. 인간 자체가 그렇게 돼먹은 존재다. 인간은 기초적인 욕망이 충족되면, 보다 질높은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책읽기와 글쓰기야말로 인간에게 `질적인 삶'에 다가서도록 돕는다. 작가가 될 것도 아니고, 평론가가 될 것도 아니면서, 왜 우리가 읽고 써야 하는지 묻는다면,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차원높은 경지인 `질'을 발견하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전통적 합리주의가 세계를 주체와 객체로 나눠놓을 때, 질은 밖으로 추방되고 만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로 꼼짝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것은 그 어떤 주체도, 객체도 아니고, 바로 질이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로버트 M.피어시그 

우리가 궁극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는 `질' 달리 말해, 길(道)를 찾기 위해서다.  끊임없이 읽고 쓰는 삶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묻고 매번 새로운 답을 얻는다.  책은 인생의 피로감을 완화시키는 완충재이자, 새로운 기운을 북돋는 재충전의 도구이다.  글쓰기는 자기 발견의 수단이자 새로운 가치를 직조하는 베틀이 될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생의 비밀을 풀어내는 일, 인생이 무엇이냐고 묻고 답하는 과정, 따지고보면 그것은 바로 책을 찾아 읽고 글을 써보는 반복되는 과정이다.  책읽고 글쓰는 일은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회속에서 생각없는 부속품이 아니라 생각하는 주체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  `책읽고 글쓰기는 길의 탐구다'.  이것이 `세계 3대 독서' 거장들의 어깨위에 올라타 궁리해본 어쭙잖은 나의 독서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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