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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이달의 인터뷰 - 책, 익다 전유겸 대표관리자2026-10-08



    “빠르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책은 온전히 내 속도에 맞춰 읽을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해요. 잠시 멈춰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책, 익다 전유겸 대표
     




    들어가며
     

    책장을 넘기고, 천천히 술 한 잔을 기울이는 시간. 홍대의 번화한 거리 한편에는 대화 대신 각자의 생각에 조용히 몰입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책과 술이라는 조금은 낯선 조합에서 출발한 ‘책, 익다’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생각에 머무르는 사람들. 때로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남긴 글에서 위로를 얻기도 합니다. 빠르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만의 속도를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전유겸 대표를 만나 책과 술, 그리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홍대에서 술 마시는 책방 ‘책, 익다’를 운영하고 있는 전유겸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회사에서 재무와 손익 관리 업무를 해왔습니다. 17년 가까이 회사 생활을 하면서 야근도 많이 했고, 자연스럽게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내 하루에서 정말 내가 선택해서 쓰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퇴근 후 혼자 조용히 책을 읽으며 술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오래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왜 꼭 먼 미래여야 하지? 지금 하면 안 될까?’라는 생각이 들어 2020년부터 준비했고, 2021년 1월 ‘책, 익다’를 열게 됐습니다. 





    Q. ‘책, 익다’라는 공간의 이름이 인상적입니다. 이름에는 어떤 의미를 담으셨나요?

     
    '익다'라는 말에는 시간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술은 대부분 오랜 숙성을 거치고, 좋은 사람은 오래 만나게 되잖아요. 책도 마찬가지로 고전이나 스테디셀러라고 부르는 책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읽혀 오고 있고요. 좋은 글과 좋은 이야기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는 생각에, 그 시간의 의미를 이름에 꼭 담고 싶었습니다. 소리 내어 말하면 '책 읽다'와 발음이 같다는 점도 좋았고요.
       

     
     
    Q. 책과 술을 한 공간에 담고자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둘 다 좋아한다는 데서 시작했어요. 혼자 여행을 다니며 여행지에서 맥주나 와인 한 잔을 곁에 두고 책을 읽어보니 오히려 책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책은 공부하는 것처럼 바르게 읽는 것이라는 생각에 익숙한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책과 술이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술도 취할 정도가 아니라 천천히 한두 잔을 즐기면 마음의 경계를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걸 ‘마음의 빗장을 살짝 열어준다’고 표현하는데요. 평소라면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책 속 이야기도 술과 함께 즐기면 조금 더 마음속 깊이 와닿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 경험을 나누고 싶어 책과 술을 한 공간에 두게 됐습니다. 




     
     

     
     
    Q. 실제로 ‘책, 익다’를 찾는 분들은 이곳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책, 익다'는 대화 없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이 책에 몰입할 수도 있고, 자기 자신에게 몰입할 수도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혼자 오시는 분들이 약 70% 정도입니다. 읽던 책을 가져오기도 하고, 책방에 마련된 열람용 책을 꺼내 읽기도 하며 글을 쓰는 분들도 많아요. 함께 오셔도 각자의 시간을 보내시고요.

    집에서 혼자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같은 공간에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때가 있거든요. 온전히 나와 내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Q.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책, 익다’의 프로그램들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쓰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노트북을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다 보니 손으로 생각을 적는 분들이 많았고, 그 모습이 글쓰기 모임과 독서 모임을 운영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글쓰기 모임은 글을 잘 쓰는 법을 배우는 강의라기보다, 매번 하나의 글감을 받고 자유롭게 글을 쓴 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속삭이다’, ‘가방’처럼 일상적인 단어가 주제가 되기도 해요. 머릿속 생각을 글로 꺼내보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발견하는 연습에 가깝습니다.

    독서 모임도 특정한 감상을 정해두지 않습니다. 같은 책도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책에 대한 감상과 자신의 삶, 요즘의 생각을 편안하게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휴무일에는 ‘와인 챗’이라는 1대1 프로그램을 열어, 혼자 가지고 있던 고민을 이야기하고 필요하다면 책도 추천해드리고 있습니다. 


     
     


     
    Q. 공간 곳곳에 방문객들이 직접 글을 남기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책방에는 ‘날적이’라는 노트를 두고 있습니다. 단순한 방명록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남기는 공간에 가까워요. 앞사람이 질문을 남기면 다음에 온 전혀 모르는 사람이 답하고, 다시 새로운 질문을 남기는 노트도 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적어두면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하고요.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이곳에서 혼자 있으면서도 혼자가 아닌 느낌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서는 주인공인데 평범한 사람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볼 기회는 많지 않잖아요. 책방에 독립출판물이 많은 이유도 그렇고요. 유명인이 아닌 평범한 누군가의 삶과 생각 역시 충분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최근에는 ‘술과 독서’, ‘야외 독서’처럼 책에 다른 취향과 경험을 결합한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오프라인 독서 공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즐기는 방식 자체가 조금 더 유연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독서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야외에서 읽는 것이 좋은 사람도 있고, 백색소음이 있는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주 조용한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래서 다양한 독서 공간들이 ‘나는 어떤 환경에서 책을 읽을 때 가장 좋은가’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책, 익다’는 그중에서도 소리와 냄새처럼 몰입을 방해할 수 있는 요소를 최대한 줄이고, 잔잔한 음악과 술 한 잔을 곁에 두고 조용히 책을 읽는 방식을 제안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 공간에 있는 책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시나요? ‘책, 익다’만의 큐레이션 원칙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주로 고르려고 해요.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정답을 주기보다, 그 답을 찾아가는 데 작은 힌트를 줄 수 있는 책이라고 할까요. 소설, 에세이, 철학 등 장르에 제한을 두기보다는 그런 질문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베스트셀러가 많지는 않고, 독립출판물이 절반 정도 되고요. 직접 충분히 읽어볼 수 있도록 열람용 책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책의 분위기에 따라 어울리는 술을 함께 제안하기도 합니다. 물론 정해진 답이라기보다 책을 조금 다르게 즐겨볼 수 있는 하나의 제안입니다. 

     


     
     
    Q. 운영하시면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방문객의 모습이 있다면요?
     
    혼자 오셔서 책을 읽던 한 분이 기억에 남아요. 자신의 생일을 혼자 보내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는 메모를 남기셨더라고요. 혼자라 쓸쓸할 줄 알았는데 책방에 남겨진 글들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적어주셨어요. 그때 공간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이런 힘도 줄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또 평소 혼자 오시던 단골손님이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오신 적도 있어요.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자신이 좋아하게 된 공간을 부모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부모님께서도 공간을 둘러보며 ‘우리 딸이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알아가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Q. ‘책, 익다’를 앞으로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으신가요? 방문하는 분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후기나 메모를 보다 보면 “나만 알고 싶은 아지트”라고 표현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속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웃음), 한편으로는 제가 만들고 싶었던 공간을 정확히 알아봐 주신 것 같아 기쁘기도 합니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카페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려 해도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껴야 할 때가 있고, 그렇다고 늘 집이나 독서실에서만 책을 읽고 싶은 것도 아니잖아요.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아무 말 없이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공간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요즘은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에도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세상이 점점 빨라지고 있고 콘텐츠도 점점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은 이미 만들어진 장면과 속도를 그대로 보여주지만, 텍스트는 조금 다르죠. 책은 내가 이해할 때까지 멈춰 있을 수 있습니다. 이해되지 않으면 다시 읽을 수 있고, 같은 문장을 읽어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장면을 떠올릴 수 있어요. 결국 자신의 속도로 읽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더하며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지금처럼 빠르고 시끄러운 시대일수록 오히려 책과 활자가 인간의 속도에 가장 가까운 매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생각하고 찾아가야 하는 시대에, 수많은 자극 속에서 자기 속도를 잃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 




     
    Q. 독서IN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한 권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연준 작가님의 『고요한 포옹』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일상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담은 에세이인데,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가르치려 하기보다 ‘이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는 책이에요. 시적인 표현도 많고 글이 정말 좋습니다.

    읽다 보면 ‘나도 이런 마음이었는데’ 하는 순간들이 생겨요. 내가 정확히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누군가 대신 언어로 표현해주었을 때 느끼는 반가움이 있잖아요. 읽고 나면 스스로를 조금 다독이고 안아주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Q. 마지막으로 독서IN 뉴스레터 구독자 여러분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꼭 좋은 책만 읽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결국 가장 좋은 책은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책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 코너만 보기보다 빼곡한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걸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아무 생각 없이 책을 꺼내보다 제목이나 한 문장에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 책을 바로 사서 읽어보는 거죠. 제가 돌아봤을 때 오래 기억에 남은 책들도 그렇게 우연히 만난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실 그 만남이 꼭 우연만은 아닐 수도 있어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생각이 어떤 제목과 문장을 알아보게 만드는 것일 테니까요.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한 책만 좇기보다 직접 고르고, 때로는 나와 맞지 않는 책도 만나보면서 자신만의 취향과 기준을 만들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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